첫 번째, 디지털시대에 부합하는 새로운 트렌드의 가능성으로서 트랜스미디어콘텐츠이다. 젠킨스(Henry Guy Jenkins III, 2006)는 ‘컨버전스 문화(Convergence Culture)’에서 트랜스미디어 스토리텔링을 “여러 매체가 각각 고유한 기여를 하여 전체 서사를 확장하는 방식”으로 정의한다. 단순한 반복이 아닌, 매체마다 새로운 경험을 창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영화, 음원, SNS, 캐릭터 굿즈, 모바일 테마로 확장된 ‘케데헌’의 전개와 긴밀히 연결된다.
‘케데헌’ 음원을 담은 앨범은 빌보드 200차트에서 2위를 기록했다. 2020년대에 ‘빌보드 200’에서 ‘톱2’를 기록한 영화 OST 앨범은 ‘위키드(Wicked)’, ‘바비(Barbie)’, ‘엔칸토(Encanto)’가 전부다. 한 편의 애니메이션이 만든 허구의 그룹 노래가 현실 음악 시장을 점령한 것이다.
특히 빌보드 ‘글로벌’(미국 제외)과 ‘글로벌 200’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한 ‘골든(Golden)’은 가상의 아티스트가 최초로 세운 기록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가장 큰 K-팝 밴드가 실제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하며, 영화 속 가상 아이돌 그룹 헌트릭스(Huntr/x)와 사자보이즈(Lion Voice, 또는 Saja Boys)가 전 세계적으로 실존 아이돌을 능가하는 인기를 얻고 있다고 분석한다. 뿐만 아니라 전 ‘U-KISS’ 멤버 ‘Kevin Woo’는 Lion Voice(가상 보이밴드)의 'Mystery' 멤버로 참여하며, Spotify 월 청취자 수가 10,000명에서 2,000만 명으로 급증했는데, 이는 가상의 캐릭터로 활동하는 것이 비현실적이지만 예술적 재탄생임을 의미한다.
이로써 대중문화의 적극적 향유층들은 디지털시대에 들어와서 비인간 아이돌에게도 깊은 감정적 교감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마침내 ‘나이들지 않고, 그래서 은퇴하지 않는 영원한 오빠 아이돌’이 디지털매체시대에 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강력한 트랜스미디어콘텐츠로서 강력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서 자리잡을 것이다.
가상 아이돌의 ‘중립성’은 양극단으로 치닫는 현실의 갈등과 실제 아이돌에게처럼 일방적인 충성을 벗어나게 하여 보다 자유롭고 포용적인 팬덤을 가능하게 할 것이고, 실제 아이돌인 BTS, 블랙핑크 등 어떤 K-팝 그룹도 달성하지 못한 기록을 세우는 큰 이유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이는 영화의 의도적 설치가 한국 고유의 멋과 맛을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우저(Hauser, 1982)는 예술을 사회적 맥락에서 분석하며, 특정 예술 양식은 사회계급, 문화적 배경, 민족적 정체성과 연결된다고 본다. ‘케데헌’의 한국적 미학이 세계적으로 공감을 얻은 것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역사적 맥락과의 접합으로 설명될 수 있다.
‘한국’에서 'K-팝'을 부르는 ‘헌트릭스’는 한국인의 일상적 휴식처인 찜질방에서 ‘몸을 녹인다’. 김밥에 컵라면이라는 이른바 ‘국룰’도 빠지지 않는다. 특히 숟가락과 젓가락을 놓기 전에 식탁 위에 휴지를 까는 장면, 반팔과 패딩이 공존하는 환절기 룩, 목이 아플 때 한의원에서 한약을 짓는 등에서는 한국적 디테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주인공들이 들고 싸우는 무기도 별자리가 새겨진 사인검, 무당(巫堂)의 무구(巫具)인 ‘신칼’ 등 전통 요소를 섬세하게 차용했다. 이는 다른 애니메이션 작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남자 아이돌 그룹은 저승사자로 등장하고 몬스터는 도깨비, 물귀신 등 한국 전통 악귀의 모습을 그대로 표현하였다.
셋째, 소재의 신선함과 서사의 보편성이라는 스토리텔링이다. 영화의 서사는 단순하다. 가상의 3인조 K-팝 걸그룹 ‘헌트릭스’가 무대 밖에서 악귀를 사냥하는 이야기다. 걸그룹이 일종의 ‘무당’ 역할을 하는 것인데, K-팝과 K-무속(巫俗)을 결합한 것은 한국의 애니메이션에서도 볼 수 없던 이야기로, 글로벌 시장에서는 더 신선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글로벌 영화평론 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케데헌’의 신선도 지수는 96%를 기록했다. ‘오징어 게임 3’의 85%나 칸 영화제 각본상을 수상한 ‘서브스턴스’89%보다도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귀신은 서양의 좀비와 본질적 특성이 다르다. 한국의 귀신은 특히 한국적 ‘한(恨)’의 대명사이다. 따라서 한국의 귀신은 서양의 좀비나 사탄같은 단순한 ‘악(惡)’이 아니라 풀리지 못한 이야기와 매듭짓지 못한 감정을 품고 있어 콘텐츠에 정서적 밀도를 더할 수밖에 없다.
K-팝 걸그룹이 퇴마를 한다는 유니크한 소재와 달리 서사의 구조는 보편적이다. 결핍을 가진 주인공들이 위기를 극복하고 세상을 구하는 영웅 서사다. 그 속에 좌절과 용기, 우정과 희생, 무엇보다 자기 확신을 찾아가는 개인의 성장이 담겼다. 또한 저승사자·도깨비·물귀신 같은 이미지는 해외 프로젝트에선 볼 수 없는 독창성이며, 시대를 풍미하는 슈퍼히어로물과도 다른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한국의 도시 서울’을 제대로 부각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케데헌'은 서울이라는 도시를 무대 이상의 의미를 갖도록 정교하게 설계했다. 극 중에서 서울은 악마와 맞서는 영웅이 활동하는 중심지다. 여기에 'K-팝'이라는 한국의 대표 문화 콘텐츠가 태어나고 소비되는 현대적 도시다. 이 설정은 서울을 역동적이고 문화적으로 매력 넘치는 도시로 재현하고, 세계 팬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줬다. 이는 과거의 K-컬쳐가 세련된 연출, 감각적인 음악, 매력적인 아티스트 등 표면적 요소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한국의 전통, 무속신앙, 일상적 감성 등 본질적이고 심층적인 문화 자체가 경쟁력이 되었음을 보여준다(민들레,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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